IT 이야기2014.11.07 09:13

필자가 6년전 처음으로 영국의 개발문화를 체험하기 전에는 한국 출신 개발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종종 한국 개발자들은 여러명이 해야 할 작업을 혼자서 처리하는 다재 다능한 개발자로 비유되어왔다.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야근을 감수하며 어떤 플랫폼이나 언어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그래서 하루에 8시간씩만 일해온 영국 보다는 하루 최소 10시간 이상을 개발에 전념해 온 한국의 개발자들이 당연히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외국 개발문화를 체험하면서 한국에서 쌓아온 경럭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졌다. 영국에서 고급 개발자들에게 거는 기대와 한국에서 고급 개발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6년전 필자는 7년 정도의 실무 경력이 있었기에 당연히 시니어 레벨이나 개발 팀을 이끄는 리드개발자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기준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한국에서 개발자 실력이라고 하면 개발 속도와 임무완수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많다. 즉, 적어도 실력있는 개발자는 일정을 밀리지 않고 잘 끝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실력 있는 개발자라고 하면 주니어 개발자들이 막힌 문제들을 잘 풀어 줄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보다는 얼만큼 코드를 객체지향 관점에서 적재적소의 패턴들을 적용하며 잘 작성할 수 있느냐로 평가된다. 



이 차이를 실감하면서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슈퍼 개발자의 능력과 방향이 조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실무에서 20~30년 이상의 개발경력을 가지는 백발 개발자는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 왔을까? 

 

먼저 개발 분야의 전문성 레벨을 드라이퍼스 모델(Dreyfus Model)에 비교해 보자. 이 모델은 80년대 초 드라이퍼스 라는 두 형제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어떤 기술을 습득하는데 있어 거치게 되는 진화과정을 5단계로 나누고 있다. 5단계는 초급자(Novice), 초중급자(Advanced Beginner), 능숙자(Competent), 숙련자(Proficient) 그리고 전문가(Expert)로 분류된다. 

 

초급자는 언어와 개발 도구에 대해 경험이 전무한 초급 개발자에 해당한다. 때문에 어떤 매뉴얼을 따라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혼자서 창의적으로 코드를 작성하기 어려운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매뉴얼이 없이 어느정도 개발이 가능한 단계가 바로 초중급자다. 어려운 로직이 아닌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코드를 작성할 수 있는 단계다. 능숙자는 언어와 툴에 대해서 모두 익숙해진 단계이고 어떤 프로그램 로직이라도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능숙자까지는 소스 품질이 외국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다.하지만 국내의 경우 품질보다는 결과를 더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숙련자로 성장해야 된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즉, 5~7년이 지나면 개발자 레벨이 평준화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능숙자와 숙련자는 만드는 결과물이 같지만 그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다 많은 예외 상황들을 고려하고 향후에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검토해 보다 언어적으로는 객체지향적이고 또 관점지향적인 설계가 가능한 것과 더불어 시스템이나 플랫폼적인 설계도 가능하게 되는 단계이다. 많은 개발 패턴들을 알고 있고 실제 어떤 상황에서 적용하면 좋고 안 좋은지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그렇다면 숙련자 레벨이 된 것이다. 

 

숙련자 레벨을 넘어서게 되면 전문가 레벨로 가게 되는데 주로 외국에서는 개발자들의 코드를 리뷰하는 아키텍트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아키텍트의 역할은 주로 소프트웨어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만큼 숙련자들이 할 수 있는 실수들을 줄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그들이 하게 되는 실수들을 미리 경험해보고 다양한 경우에 대한 설계 노하우를 갖고 조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전문가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국내의 잘못된 개발문화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화에 저항하지 않고서는 전문가의 커리어를 걷기 어렵다. 즉, 빠르게 결과를 전달하는 개발 문화에 순응하여 자기계발을 멈추게 되면 그 개발자는 능숙자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개발자의 슬럼프가 시작되는데 이 단계에서 적성과 다르게 관리자로서의 커리어를 받아들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금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혹시 능숙자에서 성장이 멈추어 있는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조금 더 예술적인 코드를 만드는 것에 투자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 예로 DRY(Don’t Repeat Yourself), KISS(Keep It Simple Stupid)와 같은 마인드 셋으로 SOLID와 같은 개발패턴들을 공부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현업에서 직접 적용해보면서 상황에 따른 장단점들을 연구해보길 추천한다. 아무리 좋은 패턴이라고 하더라도 환경에 따른 다양한 상황 앞에서는 모두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Zdnet Korea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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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