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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정부정책 홍보 주간지에 실린 개발현장의 목소리

HOONS 가 기고간 정부를 향한 개발자의 제언 글 이란 컬럼이 주간지에 실렸습니다.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IT를 책임질 대통령이 되겠다”는 반가운 발언과 함께 정부의 ‘IT 코리아 5대 미래전략’이 발표됐다. 2013년까지 총 사업비 14조1천억원을 투자하고 그중 가장 많은(28퍼센트) 4조4천억원을 소프트웨어에 투자한다고 했지만, 아직 구체성과 현실성의 부재 때문인지 소프트웨어 업계의 반응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발표 내용 중에는 글로벌 수준의 소프트웨어 기업 육성을 위해 소프트웨어 장학생을 선발해 차세대 소프트웨어 리더를 양성하고 소프트웨어 공학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IT 기술자로서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공계 기피현상’. 낯설지 않은 말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공계의 주가는 갈수록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특히 컴퓨터공학과 분야는 더욱 암울한 실정이다. 많은 학생들이 전과(轉科)를 준비하거나 복수전공을 통해 다른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로서의 비전이 밝지 않다는 사실을 선배나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앞에는 항상 ‘IT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그 말이 맞는지는 검증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 분야의 침체가 결정적 이유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모든 IT 분야의 혼이 되는 기술임에도 계속 쇠퇴하고 있을 뿐더러, 3D로 치부될 정도로 개발자들이 점점 기피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공 없이는 IT강국으로 올라서기 힘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중요한 사업은 하드웨어인 실리콘이 아닌 소프트웨어 분야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명 ‘논 제로 섬(Non-Zero-Sum)’산업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 개발자들의 정년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백발의 개발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IT 기술자들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처우 개선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사업 중 90퍼센트 이상은 시스템 통합(SI·System Integration: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시스템에 관한 기획에서부터 개발과 구축, 나아가서는 운영까지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SI 분야에서 초·중급 개발자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시간과 청춘을 바치는 것이 전부다. 즉, 주말이나 밤 시간을 투자하는 희생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초과근무수당과 같은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부문별 편차가 있지만 초·중급 프로그래머는 낮은 대우를 받는 편이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근무시간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속칭되는 주 6, 7일 근무가 다반사지만 초·중급 개발자의 연봉은 대부분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 연봉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한 별도의 야근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가 40대까지 버틸 수 있다거나 후배에게 같은 일을 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부는 청년실업에 대한 대안으로 IT 기술자들을 양성해왔으며 정부의 이번 정책에서도 인재 양성 지원책이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물론 그 덕에 당장의 성과는 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양성된 개발자는 IT문화의 쓴 고배를 마신 후에 현실을 받아들이며 하나둘씩 업계를 이탈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탈과 양성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쉬운 상황에서 인재 양성 지원책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지금까지 시행한 정부의 인재 양성 지원책은 기업이 고급인력을 찾기보다는 저임금에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중급 인력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초급 인력 둘에게 맡기면 된다는 계산인 것이다.
 


이는 젊은 개발자가 청춘을 불사르며 일에 전념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IT 구인 사이트를 뒤져봐도 2, 3년차의 초급 개발자를 원할 뿐 7, 8년 이상 된 중급 개발자를 원하는 예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설 자리를 잃은 일부 중·고급 개발자들은 해외 취업이나 전직을 통해 국내 IT업계를 떠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소프트웨어의 품질이 바닥을 치고 있는 까닭이자 해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더 이상 피해자가 늘지 않도록 국내 개발자들의 처우 개선이 급선무다. 우수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왜 부족한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IT 전문가들의 현장 이탈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 사람이 모이는 않는 곳에 비전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부는 낙후된 소프트웨어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서 세계 1백대 기업 8개와 매출 1천억원 이상인 소프트웨어 기업 27개를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생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기업 모두 평등한 기회를 가지고 경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거창한 구호보다는 시행 중인 제도를 검토하고 IT업계의 무수한 폐단들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심성 구호에 머무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해결책에 초점이 맞춰진 더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글·박경훈(HOONS닷넷 커뮤니티 대표)

박경훈은 SI 전문가이자 프로그래머로 2002년 IT업계에 입문했다. 마이크로소프트 Visual C#의 MVP에 5년 연속 선정됐으며, 그가 2002년 개설한 HOONS닷넷 커뮤니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정기 세미나와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C# 게임 프로그래밍> 등이 있으며, 영국에 체류 중이다.